살다 보면 악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대면하기도 한다. 대부분 화면 속 인물들이고 내 주변에 거의 없음에 감사한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사람이 왜 저래!”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조금 덜한 사람을 보면 “왜 저래!” 정도가 된다.

‘사람이’라는 단어가 빠진 것은 그래도 사람같기는 하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그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신분과 위치는 그것에 걸맞은 삶을 살아갈 때 인정되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의 언행을 평가할 때 그 기준은 나의 가치관이지만 사람이면 지켜야 할 기본은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이처럼 위치, 신분 등에 따라 기대되는 모습은 다르고 처신 또한 달라야 하는 것이다.

처음 ‘예수님 짜리’를 공부할 때 ‘예수님 짜리’의 그 무게감에 과연 내가 ‘예수님 짜리’로서의 인생을 살 수 있을지 무척 부담스러웠다.

하물며 “사람”이라는 그 신분만으로도 처신해야 할 것에 반성하며 사는 나의 인생이기 때문이었다. 허물과 죄로 진노의 자녀가 되어 죽어있던 나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신 그 계획대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살리시고 구원의 선물을 아무런 대가 없이 주시며 ‘예수님 짜리’라는 최상의 신분을 주셨는데 어떻게 ‘예수님 짜리’로서 신분을 감당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과연 ‘예수님 짜리’라는 그 귀한 신분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부인하며 외면했던 나같은 죄인을 왜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당신의 자녀로 예비하시고 이 귀한 신분을 거저 주시는 은혜를 베푸셨을까? 내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내려놓을 수도 없는 이제는 누가 뭐라 해도 변하지 않을 ‘예수님 짜리’라는 엄청난 가치가 있는 존재가 하루아침에 된 것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그 부담감도 엄청났다. 그래서 그것을 부담이 아닌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를 먼저 하기로 했다.

‘예수님 짜리’ 신분을 받아들이고 ‘예수님 짜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성경공부를 통해 알아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계획이 무엇이며,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것을 위해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정하신 영원한 목적은 모든 성도가 하나되어 교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하고 그 영광이 흘러나와 교회 밖에도 하나님의 생명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교회의 일부인 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믿음의 선배인 우리 세우리교회의 선한 집사님들처럼 섬기며 살 수 있을까? 난 그런 그릇이 되지 못하고 그럴 만한 여건도 되지 않는데…… 또 부담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그러다 교재의 <영원한 목적을 알게 된 자매의 고백>을 읽고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 자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감히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겠다는 거창한 말은 못하겠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목적에 흡수된 삶을 살겠습니다.” 이 고백을 읽고 나 또한 같은 고백을 하였다. 그러면서 ‘현재의 나는 우리 세우리교회 공동체 안에서 도움이 되는 역할은 못하지만, 각 지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교제하고, 주신 분량대로 선하게 행할 마음을 가지고 간구하다 보면 미래의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은혜 충만한 예수님짜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예수님 짜리’ 신분에 합당한 내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진리, 의, 평안의 복음. 믿음. 구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그 전신갑주가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능력을 제공하는 기도를 열심히 하여야겠다고 다짐했다. 하나님과 진심으로 교제하며 그리스도 속에 푹 빠지면 이미 승리한 삶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하나님 안에 온전히 거하도록 “깨어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자!”는 다짐으로 성경공부를 마쳤다.

소감문을 바로 작성하지 못하고 2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 소감문을 작성하고 있다. 그 때의 감정과 감사와 다짐을 되새기며 이 글을 쓴다. 은혜 충만했던 그 마음이 고작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답답한 현실의 벽과 세상의 것들로 인하여 많이 작아졌음을 고백하며 회개한다.

바로 소감문을 작성하지 못하고 다시 돌이켜보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싶다. ‘예수님 짜리’로서의 마음이 줄어들면 다시 꺼내보며 최상의 신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꺼이 ‘예수님 짜리’로서의 삶을 살기 위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나는 ‘예수님 짜리’다. ‘예수님 짜리’가 왜 저래! 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예수님 짜리’답게 살겠다!!!”

– 이영주성도 드림  2023.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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