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예수님 짜리’를 마친 지 시간이 꽤 지나고 그 이후의 ‘예수님 짜리’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생활 속에 이루어진 성찰도 포함되어 있다.)

먼저, 돌이켜보면 나는 ‘예수님 짜리’를 시작할 당시에는 구약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성이 신에 대한 개념이었고, 예수님에 대한 존재성이 애매한 상태였고, 출국을 앞둔 시점에서 [예수님 짜리]를 다 마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출국 시점은 조금씩 의도하지 않게 늦어지면서 다행히 모든 수업은 정확히 마쳐지게 되고, 시작 당시와는 확연히 다른 마지막 2주 동안에 나에게 다가온 그 놀라운 변화를 기록해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에 남는 것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한 비유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져 정확히 알게 된 것이다. 새로운 자아(혹은, 성령님)에 대한 형성이 우리가 우선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여겨왔던 나였기에 특히 그 부분이 기억에 남는 듯하다.

생명수의 연결성이 없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무리 화려한 장식을 가지고 있어도 죽은 것이기에 생명수와의 연결이 유지되어 있어야 하고,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수의 길을 보증해주신 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그러한 것을 가르쳐주시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왜 항상 실망만 드리는지? 그런 생각에 다다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존재성은 하나님만큼 중요해지는 것은 당연해질 것이다.

즉 우리 개인이 죄성을 가진 자연적인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의해 하나님과 튜닝된 새로운 자아를 가지기 위해 끊임없는 수양을 해도 우리는 그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생명수의 연결은 우리의 노력과 힘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 짜리’에서 배운 회막의 구조와 회막에서 이루어지는 제사의 내용들을 보아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죄성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임을 아시고 끊임없이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에게서 떠나지 않게 하시고자 그 죄를 불사르는 방법들을 알려 주셨지만, 그 또한 결국에는 외식으로 치닫게 해버리는 인간의 또 다른 한계성을 아시고는 그 모든 율법과 그 모든 외식하는 행위를 폐하시고, 크나큰 사랑으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 혼자만의 율법 수양이나 죄 사함의 제사들만으로는 스스로가 온전히 나아갈 수 없는 존재이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외식을 폐하시고 각 지체들이 성전 그 자체가 되고, 더 큰 성전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연결 해주시고, 온 성전의 머리 되어주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 됨을 이루게 하시고자 우리에게 새로운 성전과 계명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 짜리’를 배우는 마지막 2주 동안에 그러한 깨달음이 나에게 있었고,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과 신(神)에 대한 개념의 절대성에 변화가 일어났다.

다시 말해, 거룩한 성전 되기 위해 자연적인 자아를 버리게 하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새로운 자아로 구원받는 삶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며 기본적인 큰 복음일 테지만, 더불어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각 지체들과 하나 되어가는 삶을 살 때에 온전히 완성된다는 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마지막까지 이루시고 가신 또 하나의 위대한 복음으로 깨닫고 그러한 ‘예수님 짜리’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이전의 나 혼자 수양을 잘 해서 잘 살면 구원받는 삶이라는 생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삶의 영역에서 구원의 복음의 향기가 배어있는 삶으로 하나의 벽돌되어 예수님과 함께 성전을 이루어 가며 내 주변의 지체들과 예수님의 복음을 나누는 삶이 ‘예수님 짜리의 가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나는 ‘예수님 짜리‘로서의 내 삶의 시작으로 내 주변의 지체 중에서 복음을 나누고자 가장 먼저 생각나고, 늘 고민해오던 엄마(나이 먹어도 나는, 엄마는 엄마가 더 좋다.)가 계신 진주로 내려가 교회를 나가보시라고 성경을 사드리고, 필사도 해보시라고 노트와 펜도 마련해 드리고, 손잡고 기도도 해드렸다.

그리고 지금은 교회를 나가고 계신다. 나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당신의 먹는 것, 입는 것들조차도 누리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보다는 당신의 가장 가까운 지체인 우리 삼남매를 위해 홀로 당신 청춘의 피와 살을 불살라 희생의 복음으로 사신 분이셨다.

성경 공부를 하면서 교재에 있는 모든 질문에 답변하였지만 딱 하나, 답변을 못한 것이 있다. ‘당신의 가장 소중한 가족이 죽으면 어떨 것 같냐?’라는 질문이었다. 이제는 답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생명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 박재진성도 드림  2023.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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