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누군가 목사님을 찾는다고 해서 내려가 보니, 이미 2층 중간계단까지 올라와 서 있는 남루한 옷차림의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양말을 신었으나 왠지 발 냄새가 나는듯했다. 그래서 2,3층에는 아이들이 있는 시간이라 1층 예배실로 가자고 인도했다. 슬리퍼를 신고 한쪽 발을 저는 듯한 걸음걸이로 따라 나선다.

 예배실 뒷자리에 앉으시라고 하고 그 앞자리에 걸터앉았는데 땀 냄새가 물씬 풍겨 코끝에 머무는 듯 했지만, 얼굴을 마주 보고 어떻게 찾아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교회 얘기를 먼저 시작했다.

“저는 주은청설 근처에 0000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몇 달 부천으로 일하러 다녀온 사이에 교회가 없어졌고 목사님하고 연락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천에서 일하다가 그곳에 다른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폭행을 당해 발목과 오른쪽 어깨를 다쳤고 지금은 갈 곳이 없어져서 저 같이 장애는 아니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돌봐주는 곳에 갈 수 있었으면 해서 여러 교회를 찾아다녔습니다.”

 또박또박 차분하게 얘기하기를 여러 교회를 다녀본 결과 두 군데 거처할 만한 곳으로 소개받고 가봤으나 장애인들만 수용하는 곳이라 있을 수 없었고, 일자리를 마련할 동안만 머물만한 곳을 찾는다고 하였다.

“가족은 어떻게 되세요? 결혼은 안하셨어요?”

“정말, 목사님 왜 이러세요?”

“예? 왜요?”

“지금껏 여러 교회를 가 봤는데 아무도 제 가족에 대해서는 물어보신 분은 없었어요.”

“아니 이렇게 도움을 요청할 만한 어려움이 가정에 있었을텐데, 당연히 궁금하지요.”

“…고맙습니다. 저는 결혼은 했었는데 3년이 채 안되서 헤어졌습니다. 울산에서 병든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가 아버님 먼저 돌아가시고, 병든 어머님 돌보다가 아기를 유산하고 함께 살기 어려워져서..”

“그게 언제 얘기예요?”

“제가 올해 마흔네살인데, 12년 전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탁은 일을 좀 하고 고시원이라도 들어갈 때까지 한 달이라도 잠시 머물만한 숙소 같은 곳을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두 군데 약도와 연락처가 적힌 종이가 있었는데 땀에 젖었었는지 종이는 낡아 보였고 메모 내용은 번져 있었다.

 근처에 ‘밀알의 집’에도 다녀왔지만 장애인들만 거처할 수 있는 곳이라 안된다고 했다고 하였다.

 ‘..한 달 정도 머물 곳이라.. …’ 이웃에 혼자 사시는 성도님께 연락을 드려 오시라 하고, 방 하나를 내줄 수 있는지 부탁을 드렸더니, 듣고 있던 그는 내게 “목사님,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어렵사리 부탁드리는 내가 더 미안할 만큼 사리분별력이 있어 보이는 말을 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드리길 바랍니까?”

“혹시 지방회나 이웃교회에 저 같은 사람 잠시 머물 단체나 복지기관이 있으면 소개시켜주십시오. 다른 목사님들께 연락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글쎄, 그런 곳을 아실만 한 목사님이 없어요. 생각이 나지 않아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제 얘길 들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려요. 목사님처럼 앉아서 제 얘기를 들어 주신 분이 없었어요.”

“… 목사님들이 다들 바쁘셔서 그래요.”

“저는 가보겠습니다.”

“아니, 어디로 가시려고 그러세요?”

“그냥, 저 같은 사람 있을 만한 곳을 더 찾아봐야지요.”

“,,, …”

 그는 그냥 일어서려고 하였다. 어디 갈만한 곳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울산에 작은 아버님댁이 있는데 부모님 돌아가시고 명절마다 찾아뵈었는데 작년 겨울 설부터 못 찾아뵈었지만 찾아가면 박대하지는 않으실 거라고 하였고, 근처에 대전가는 버스라도 탈 수 있게 해주시면 울산까지 가보겠노라고 하였다. 알겠노라고 하고 차를 태워 버스터미널로 향하다가 평택역으로 향해갔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울산으로 가는 기차를 태워주겠노라고 하였더니, 젖은 목소리로 “목사님, 왜 그러세요? 다른 분들은 그렇게 대하시지 않던데…”라고 하였다.

 떠오르는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답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설 때, ‘네 이놈, 2015년 8월 28일에 보낸 이00이를 왜 그렇게 돌려보냈느냐?’ 하고 물으실까봐 그렇지요.”

 가끔 찾아오는 행려자들을 만날 때마다 ‘…어쩌면 그에게 나는 마지막 목사일 수 있고, 마지막 만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해야 할 태도가 명확해진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내 삶을 내어드릴 수 밖에…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태복음5:42)

-함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생명을 전하는 김목사드림-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