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마음에 둔 말씀중 하나가 마가복음 7장의 예수님 말씀이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가복음7:22-24 개역한글)

 사람의 죄성이 드러나는 마음에 담겨있는 것중에 눈에 띄는 것이 “…흘기는 눈..”이라는 것이었다. ‘홀기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포네로스’는 기본적으로 ‘악한’(엡6:13)이라는 뜻이므로 본문을 직역하면 ‘악한 눈’(KJV, an evil eye)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개역개정 성경에는 “…질투…”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개역한글번역이 훨씬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왜 ‘흘기는 눈’이 죄성의 한 부분일까?

 그것은 이중적 메시지를 의미한다. 눈을 흘기려면 얼굴은 전면 중앙을 바라보고 눈동자만 좌측이나 우측을 향해 있어야 한다. 결국 전면 자세와는 다른 이중적 태도를 드러내는 모습이다. 이것은 거짓말과도 연결되어 있어 이중적으로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며 참된 진리를 등지는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어 말을 함’과 ‘전과는 아주 딴판임’이라는 말이다. 뱀은 혀가 갈라져 있다. 그것은 한 입으로 두 가지다른 말은 한다는 상징으로 거짓의 아비 마귀는 옛 뱀(계20:2)으로 상징되어 표현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한복음 8:44)

 믿음의 사람으로서 조심해야 할 것이 많지만 작은 것에서 부터 충실해야 한다. 그것은 ‘내실(內實)’이다.

 내실(內實)의 국어사전에 나온 뜻은 ‘내부의 실제 사정’, ‘내적인 가치나 충실성’으로 풀이된다. 그러니까 신앙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내적인 충실함이 배어 나오는 믿음이 내실이고 그것은 진실(眞實), 성실(誠實), 신실(信實)이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태도는 이중성을 버리게 된다. 가정에서의 삶이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든 한결같은 태도와 자세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흘기는 눈’으로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는 죄성이 드러나는 것이기에 되도록 한결같은 얼굴과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흘기는 눈이 죄입니다. 눈을 흘기지 말자. 째려보지 마!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형제되고 동역자된 김만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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