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23:10)

 욥기는 어느 시대 그 누구나 제기할 수 있는 인생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신가?”

 욥기는 서두에서 보여주듯이 욥이 시험을 당하게 된 것은 이 지상의 존재들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라 천상의 존재들에 의해 결정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욥의 이해와 설득을 전제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자신이 왜 이 상황에서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모르고 있기에, 더 괴로운 시간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주어진 신앙을 배반하지 않고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들에 직면합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며,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욥도 또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건강과 부요함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 축복을 거두어 가신다면 욥의 신앙은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욥을 시험할 기회를 얻고자 힘씁니다.

 욥이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앙은 물질적인 축복에 근거하는 것이 되며, 결국 하나님의 영광은 빛이 바래고 말 것입니다.

 과연 욥이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주어진 인생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으로 몰려가고 납득하지 못할 불공평함에도 욥은 정의로우신 분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욥도 여러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겪게 됩니다. 울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자기중심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는 장면들이 욥기 전편에 걸쳐 나타나고 그려집니다. 또한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고통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나누며 논쟁이 오가지만 욥에게는 별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 지적인 면에서의 회의에 빠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관계의 파괴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친구들로부터 위로받기는 커녕 오히려 숨겨지고 드러나지 않은 죄악이 원인이 될 것이라고 추궁당하기까지 합니다. 관계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조차 의미없는 시간들을 맞이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자기에게 왜 재앙이 주어졌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 하고 싶어합니다. 결국 욥의 소원은 이루어져서 엘리후가 욥에게 자격조차 없는 존재임을 드러내었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욥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질문은 하나님이 쏟아 놓으십니다. 하나님은 신비로운 창조 세계를 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계시하여 주심으로 결국 욥은 하나님을 다시금 신뢰하는 자리에 굳건히 서게 됩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님안에서 형제되고 동역자된 김만천목사드림-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