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예전 교회에 있던 목사님이 생각납니다. 제가 우리 아동부, 청소년부 아이들을 의무감이 아닌 사랑하게 되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예전 교회 목사님이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성도 한 트럭을 갔다가 줘도 너 하나랑 안 바꾼다.” 물론 진짜 그 상황이 오면 성도 한 트럭을 선택하셨을 테지만 그 말이 저에게 굉장한 뒷빽?! 이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을 벌이든지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뒷수습은 그렇게 말한 그가 하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권한도 능력도 없지만 아이들에 한해서는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예쁘게 커가는 아이들에게 오는 세찬 바람을 조금이라도 막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모든 순간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는지 걱정하시는 부분들이 많은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들 모른 척한 채 저만이라도 아이들 편이면 좋겠습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청소년부 주형이의 경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엄청난 조회수에도 놀랐지만 짠했습니다. 조그맣고 가냘프기만 한 아이가 몸으로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버텨내며 결국엔 승리를 가져오는 그런 경기였습니다. 그 아이의 삶이 늘 그렇게 치열했을 것 같아 안쓰러웠습니다. 주형이가 경기를 한다고 하면 승패를 떠나 다쳐서 오니까 조마조마합니다.

 주형이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이들의 삶이 늘 그렇게 치열할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의 삶이, 학원에서의 삶이, 가정에서의 삶이 모두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동부 아이들도 매일 노는 것 같아 보여도 학교에서의 적응이, 친구 사이에서의 문제들이 늘 큰 산처럼 앞에 놓여져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것도, 내 부서 아이들이니까 침범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맡겨진 일을 하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냥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아이들과의 만남의 끝이 있음을 알기에 그 끝 이전에는 더 많이 사랑하고 싶습니다. 사랑의 방법은 모두가 다릅니다. 같아서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랑의 방법으로 그들의 편이 되어주는 것을 택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일서 410,11)

-임수미 전도사드림-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