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제사장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고, 어떤 사람이 제사 고기를 삶을 때에 자기 것으로 가지고,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고기 날 것을 구워 먹으려고 제 것처럼 빼앗으며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무엘에게도 아들들이 있었는데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였습니다.

 사울에게는 요나단이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루는 블레셋으로 건너가며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는 믿음을 보입니다.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에게는 도움을 받은 다윗은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는 그의 반란으로부터 피해 도망하게 됩니다.

 아버지들은 참으로 바쁩니다. 모든 백성의 제사장직을 맡아 수행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전해야 하고, 한 나라를 일으키고 무너트리는 일도 해야 합니다. 이들 모두를 보면 그 아버지들 유전자의 반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도, 그리고 어릴 적부터 그들이 가진 가정환경 속에서 키우고 그들의 교육으로 자라났을 것인데 그들의 바람과 믿음대로 그 자녀들에게 참으로 온전히 전해지기가 어려운 것인 듯 보입니다.

 손경민 목사님의 찬양 중에 ‘어머니의 기도’라는 곡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어머니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자녀를 살게 하고, 반드시 응답받고, 기적을 일으키네’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기도에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한나의 기도와 마리아의 기도는 위대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바람이 어머니의 것과 무언가 크게 다른 게 있는 것인가요?

 저에게도 아들이 둘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저의 말과 행동과 함께 저의 기도와 저의 간절함도 온전히 그들의 마음 깊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사랑과 공의의 충돌로 인해 고통 하시던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내어주시고 그분의 사랑과 공의를 모두 나타내시는 ‘십자가’를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십니다.

 저는 그러한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지 못하므로 시간이 훌쩍 지나가서 언젠가는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있을 때쯤에야 알게 될 것을 기다려 봅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중략)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마태복음 17:15,16)

-박한이, 박찬이의 아빠 박재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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